본문 바로가기

▤ 글/시(詩)

이성부 - 시(詩)에 대하여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열 살짜리 둘째 딸이 조심스럽게 묻는다

 

"아빠, 시(詩) 좀 가르쳐 줘, 시(詩)가 무어야?"

 

그 천진스런 입과 눈망울에 대고

나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

나는 그것이 너를 꿈나라로 데려가고

네 동무를 사랑하고

너를 함박꽃 웃음 속에 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

나는 그것이

무엇보다도 평화라는 것을 알릴 수가 없다

 

갈보가 돼버린 시(詩)를 어디 가서 찾으랴!

이미 아편쟁이가 된 언어를

어디 무슨 마이신 무슨 살풀이 무슨 중성자탄으로

다시 살리고 또 죽일 수가 있으랴!

이미 약속을 저버리기로 한 언어

이미 저를 시궁창 쓰레기통에 처박아둔 지 오래인 언어

이미 저를 몸 째로 팔아버린 언어

어디 가서 다시 찾을 수가 있으랴!

무슨 아프리카 무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도

어찌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있으랴!