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열 살짜리 둘째 딸이 조심스럽게 묻는다
"아빠, 시(詩) 좀 가르쳐 줘, 시(詩)가 무어야?"
그 천진스런 입과 눈망울에 대고
나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
나는 그것이 너를 꿈나라로 데려가고
네 동무를 사랑하고
너를 함박꽃 웃음 속에 두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
나는 그것이
무엇보다도 평화라는 것을 알릴 수가 없다
갈보가 돼버린 시(詩)를 어디 가서 찾으랴!
이미 아편쟁이가 된 언어를
어디 무슨 마이신 무슨 살풀이 무슨 중성자탄으로
다시 살리고 또 죽일 수가 있으랴!
이미 약속을 저버리기로 한 언어
이미 저를 시궁창 쓰레기통에 처박아둔 지 오래인 언어
이미 저를 몸 째로 팔아버린 언어
어디 가서 다시 찾을 수가 있으랴!
무슨 아프리카 무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도
어찌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있으랴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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