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사직공원(社稷公園) 비탈길
벚꽃이 필 때면
나는 아팠다
견디기 위해
도취했다
피안(彼岸)에서 이쪽으로 터져 나온 꽃들이
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
어떤 죄악도 아름다워
아무나 붙잡고 입 맞추고 싶고
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
사춘기 때 수음(手淫) 직후의 그
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
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
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
나는 나의 생(生)이 이렇게 될 줄
그때 이미 다 알았다
이제는 그 살의의 빛
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
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
오직 축하해주고 싶은
늦은 사랑을
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
나는 비로소
이번 생(生)을 눈부시게 했던
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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