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▤ 글/시(詩)

서울의 달 -고혁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는개 철철 내리는 밤 한강 다리

악을 쓰는 자동차 행렬에 쫓기듯

웅크린 채 떠밀려 가는 사내

 

용산역 대합실도 지나버렸고, 이제

갈 곳이 없다. 텅 빈

뱃속 어지러운 머리

어디 잠재 울 구석이 없다.

 

한 많은 청춘 더럽게 날렸다

좋다고 서울 와서 있는 힘

없는 자랑 죄다 빼앗기고

땀내 나는 그림자마저

전깃불 빛에 먹혔다

 

간다, 누더기뿐인 몸뚱이 하나

갈가리 찢긴 가슴을 안고

아무 소리 않고 다리 위를 간다

비칠비칠 뻘건 살덩어리 간다

 

사내야, 앞도 안 보고 가는 사내야

내일 또 다시 이 길로 돌아올 거냐

네 뒤에 부끄러이 가는 나는

함부로 말 붙일 수도 없다

 

다리 아래, 함께 건너는 이 다리 아래

시꺼먼 물 도도히 떠내려가고

물귀신 떼처럼 서울이 비쳐 보인다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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