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망토처럼 추근추근한 습지기로니
왜 이다지야 태양이 그리울까
의사는 처방을 단념하고 돌아갔다지요
아니요 나는 인생이 더 노엽지 않습니다
여행도 했습니다 몇 낱 서투른 러브씬- 무척 우습습니다
인조견을 두르고 환(還) 고향하는 어사도(御史道)님도 있습디다
저마다 훈장처럼 오만합니다 사뭇 키가 큽니다
남들은 참말로 노래를 부를 줄 아나배
갈바람 속에 우두커니 섰는 벌거벗은 허수아비들
어느 철없는 가마귀가 무서워할까요
저런 연빛 하늘에도 별이 뜰 리 있나
장미가 피지 않는 하늘에 별이 살 리 있나
바람이 떼를 지어 강가에서 우짖는 밤은
절망이 혼자 밤새도록 내 친한 벗이었습니다
마지막 별이 흘러가도 아무도 소름치지 않습니다
집마다 새벽을 믿지 않는 완고한 창들이 잠겨 있습니다
육천 년 메마른 사상의 사막에서는 오늘 밤도
희미한 신화의 불길들이
음산한 회의의 바람에 불려 깜박거립니다
그러나 4월이 오면 나도 이 추근추근한 계절과도 작별해야겠습니다
습지에 자란 검은 생각의 잡초들을 불사뤄버리고
태양이 있는 바닷가로 나려가겠습니다
거기서 벌거벗은 신(神)들과 건강한 영웅들을 만나겠습니다
♬ Michael Hoppe - Elegy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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