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▤ 글/시(詩)

김기림 - 겨울의 노래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망토처럼 추근추근한 습지기로니

왜 이다지야 태양이 그리울까

의사는 처방을 단념하고 돌아갔다지요

아니요 나는 인생이 더 노엽지 않습니다

 

여행도 했습니다 몇 낱 서투른 러브씬- 무척 우습습니다

인조견을 두르고 환(還) 고향하는 어사도(御史道)님도 있습디다

저마다 훈장처럼 오만합니다 사뭇 키가 큽니다

남들은 참말로 노래를 부를 줄 아나배

 

갈바람 속에 우두커니 섰는 벌거벗은 허수아비들

어느 철없는 가마귀가 무서워할까요

저런 연빛 하늘에도 별이 뜰 리 있나

장미가 피지 않는 하늘에 별이 살 리 있나

 

바람이 떼를 지어 강가에서 우짖는 밤은

절망이 혼자 밤새도록 내 친한 벗이었습니다

마지막 별이 흘러가도 아무도 소름치지 않습니다

집마다 새벽을 믿지 않는 완고한 창들이 잠겨 있습니다

 

육천 년 메마른 사상의 사막에서는 오늘 밤도

희미한 신화의 불길들이

음산한 회의의 바람에 불려 깜박거립니다

 

그러나 4월이 오면 나도 이 추근추근한 계절과도 작별해야겠습니다

습지에 자란 검은 생각의 잡초들을 불사뤄버리고

태양이 있는 바닷가로 나려가겠습니다

거기서 벌거벗은 신(神)들과 건강한 영웅들을 만나겠습니다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♬  Michael Hoppe   -   Elegy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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